2025년 5월 1일, 지요다구 호텔에서

이 도시의 사람들은 대체로 좌측통행을 지킨다. 내게는 낯선 일이다.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것을 볼 때마다, 과장하자면 걸어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왼쪽으로 걸어다니는 것에도, 오른쪽으로 걸어다니는 것에도 자유는 없는 것 같았다.

“x는 a보다 같거나 크고, b보다 같거나 작다” 나는 시대의 산물이다. 나는 이 부등식을 절대로 초월할 수 없다. 세상은 카탈로그다. 나는 그저 몇 가지 보기들 중 하나를 고르는 수밖에. 왼쪽으로 걸어다니며 나는 생각했다.

2025년 5월 2일, 지요다구 호텔에서

“すみません”
이곳 사람들은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들 눈에 내가 보인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2025년 5월 3일, 지요다구 호텔에서

내가 기억하는 어두운 방에는 아버지가 계신다. 내가 유치원에 다니고 있을 때, 아버지는 후레시 조명과 공 몇 개를 챙기시며 나를 방으로 부르셨다. 아버지는 불을 끄고 후레시 조명으로 공들을 비추시며 지구의 공전과 자전, 달의 모양의 변화에 대해 알려주셨다. 그 방의 바닥은 분홍색 바탕에 캐릭터가 등간격으로 그려진 장판이었고, 아버지의 후레시가 바닥을 비출 때마다 장판에 새겨진 반짝이들이 빛을 반사했다.

그 방은 언제나 내게 완전하다. 그러나 그 공간이 그 방을 완전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방을 완전하게 하는 건 아버지의 존재다.

완전한 방을 만드는 것은 내 일생의 목표이다. 먼저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그런 방을, 그리고 언젠가 아버지로서 자녀에게 그런 방을 만들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한 번도 만난적 없는 사람들, 이름 모르는 이들에게도 가닿을 수 있지 않을까.

2025년 5월 4일, 지요다구 호텔에서

방향은 상대적인 것이다. 스쳐가는 사람들의 오른쪽과 나의 오른쪽은 완전히 다른 곳을 향한다. 여행 내내 아내와 나는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오른쪽은 우리의 것, 왼쪽도 우리의 것이었다.

오래된 돈까스 집에서 나는 크게 감탄했다. 그곳의 직원들은 모두 본인이 해야할 일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른쪽은 그들의 것, 왼쪽도 그들의 것이었다.

다도에는 불필요한 동작이 없다. 우아함은 간결함에서, 간결함은 앎에서 비롯된다. 내게 차를 내어줬던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내가 매료되었던 것은 다름 아닌 침묵이다. 아름다운 침묵.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우아한 소리.

2025년 5월 5일, 지요다구 호텔에서

내가 옳다고 믿는 것,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상당히 구체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들을 나타나게 하는 것이 나의 일. 나는 이것에 모든 것을 걸겠다.